후티 반군 공격에 흔들리는 사우디 ‘비전 2030’…탈석유 경제 구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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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추진해 온 탈석유 경제 개혁 구상이 안보 위기와 대형 투자사업의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주요 국제행사에 글로벌 기업 경영진의 불참이 이어지면서, 사우디를 세계적인 금융·관광·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하려던 계획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최근 엿새 동안 리야드의 관문인 킹칼리드 국제공항을 다섯 차례 공격했다. 지난 10일 발생한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13명이 숨지고 300명 이상이 다쳤으며, 11일에도 공항 제4터미널에 발사체가 떨어져 화재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나왔다. 사우디 항공당국은 공항을 최소 16일까지 전면 폐쇄하기로 했다.
공항 운영 중단은 사우디의 국제행사 유치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석유회의(WPC) 에너지 총회에는 엑손모빌과 셸, 토탈에너지, BP 등 주요 글로벌 석유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하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당초 4월 개최 예정이었던 이 행사는 이란 전쟁으로 한 차례 연기된 끝에 열렸지만, 이번에는 공항 피격에 따른 교통 차질로 주요 인사들의 참석이 어려워졌다.
사우디는 이번 총회에 장관 100여 명과 기업 최고경영자 약 500명을 포함해 2만5000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933년 시작된 WPC 에너지 총회가 사우디에서 열린 것은 비전 2030 추진 이후 처음이었다. 국제 에너지업계의 주요 인사들을 유치해 사우디의 위상을 높이려던 계획이 안보 문제로 차질을 빚은 셈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총회에서 사우디에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현장에서는 서방 기업인들의 불참과 이동 차질이 이어졌다. 공항이 폐쇄되면서 행사 참석자들이 바레인이나 카타르까지 육로로 이동한 뒤 항공편을 이용해 귀국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달 26일부터 29일까지 예정된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 역시 불확실성이 커졌다. 2017년 출범한 FII는 미국 월가의 금융사 경영진과 글로벌 투자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로, ‘사막의 다보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사우디 당국은 행사를 예정대로 개최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경제 매체 세마포는 일부 미국 관리들이 참석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 살만 왕세자 측 비영리재단이 주관하는 미스크 글로벌 포럼은 다음 달 행사를 취소했다. 리야드에서 투자자 행사를 준비하던 한 대형 사모펀드도 연사들의 불참이 잇따르자 행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행사 취소와 참석자 감소가 이어지면 사우디가 해외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는 데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6년 발표한 비전 2030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로도 평가된다. 비전 2030은 석유 수출에 의존해 온 경제구조를 관광과 물류, 금융, 기술 등으로 다변화하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다. 사우디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국제 스포츠·문화 행사 유치를 통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 해왔다.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은 이러한 전략의 핵심 기반시설이다. 사우디는 2030년 세계박람회와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앞두고 공항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설립한 신생 항공사 리야드에어도 이 공항을 거점으로 삼아 두바이와 도하에 맞서는 국제 환승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공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관광객과 투자자 유치뿐 아니라 대형 국제행사 준비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사우디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과 사막 스키 리조트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초대형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사업비 지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쟁 관련 비용까지 늘어나면 국가 재정 운용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일부 대형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투자 계획이 조정될 경우 해외 기업의 참여와 자금 조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1·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연속 감소했으며,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석유 부문을 제외한 사우디 경제 규모가 올해 2분기에 전 분기보다 줄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 재무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3.6%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러한 경제 상황에는 안보 위기뿐 아니라 투자사업의 속도 조절과 국제 에너지 시장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포츠와 국제행사를 통한 국가 브랜드 강화 전략도 도전에 직면했다. 사우디는 올해 1월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 계획을 포기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네옴 등 개발사업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스포츠 투자를 통한 이미지 제고 전략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비전 2030 전반의 추진 일정과 투자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대응도 사우디가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리야드 공항 공격을 끔찍한 일이라고 언급하고 빈 살만 왕세자와 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후티 반군과 대화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핵심 안보 파트너인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자본과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대규모 개발사업만큼이나 안정적인 안보 환경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공항과 주요 시설이 공격받을 위험이 지속되면 기업인과 관광객의 방문이 줄고, 투자자들이 사업 참여를 재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산업은 여행객의 안전에 대한 인식에 민감해 안보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사우디의 비전 2030이 좌초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이번 사태는 국가 경제의 다변화가 단순히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 투자 유치와 관광산업 육성을 지속하려면 군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 체계와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향후 안보 상황과 외국인 투자 회복 여부, 초대형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사우디 경제 개혁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우디의 안보 불안과 비전 2030의 사업 차질은 한국의 건설·플랜트·방산·관광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우디는 한국 기업들이 중동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해 온 주요 시장 중 하나로, 신도시 건설과 공항 확장, 에너지 시설, 교통 인프라 등 대형 프로젝트는 국내 기업의 수주와 해외 매출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안보 위기가 장기화하면 공사 일정이 지연되거나 발주와 투자 결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현지 인력과 자재의 이동이 어려워지고 보험료와 물류비가 상승하면 프로젝트 수익성도 악화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수주 규모뿐 아니라 계약상 위험 분담, 대금 지급 조건, 공사 중단에 따른 비용 처리, 현지 직원의 안전 확보 등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반면 사우디가 핵심 인프라의 방어와 복구에 투자를 확대한다면 공항 보안, 방공 체계, 사이버 보안, 시설 복구 등 일부 분야에서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실제 발주 확대 여부는 사우디 정부의 예산과 안보 상황, 사업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에너지 시장 측면에서는 사우디가 주요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석유 생산과 수송에 차질이 발생하면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이 증가하고, 물류비와 제조원가, 소비자 물가에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 다만 공항 공격만으로 석유 공급 차질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실제 원유 생산량과 수출 시설, 주요 해상 운송로의 운영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사우디의 경제 다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한국 기업에 건설·기술·관광·서비스 분야의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안보 불안과 재정 부담으로 사업이 반복적으로 지연되면 중동 시장에 대한 투자 판단에도 신중함이 커질 수 있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사우디의 대형 프로젝트 계획만 볼 것이 아니라 현지 안보 환경, 재정 여력, 투자 집행 상황을 함께 살펴 시장 위험을 관리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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