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러시아산 경유 도입 승부수…미국 내 연료 가격 인하 효과는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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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치솟는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산 경유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제 가격 안정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공급 물량이 미국의 경유 소비량에 비해 적은 데다 러시아의 수출 여력에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비 부담을 낮추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러시아산 경유 공급 계획만으로는 미국 내 연료 가격을 큰 폭으로 낮추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러시아산 에너지 도입 합의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합의했다며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 30만t 이상을 즉각 공급하고, 11월에는 50만t을 추가로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최대 400만t을 추가 공급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그러나 발표된 공급 물량은 미국의 경유 소비 규모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WSJ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물량을 하루 평균 공급량으로 환산한 결과, 이달 공급량은 하루 10만 배럴을 조금 웃돌고 11월에는 약 12만5000배럴 수준으로 추산됐다. 이는 러시아의 지난해 하루 평균 경유 수출량인 약 80만 배럴에도 크게 못 미친다.
로이터통신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를 인용해 미국 운송 부문의 하루 경유 소비량이 약 294만 배럴에 달한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우선 공급하기로 한 경유 30만t은 약 225만 배럴로, 미국 운송 부문이 하루 동안 소비하는 물량보다 적다. 공급이 계획대로 이뤄지더라도 미국 내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업계에서도 가격 인하 효과에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연료 판매업체 텍시칸 내추럴 가스의 캐롤라이나 지역 사업부 사장인 오브리 힐리어드는 이번 공급 규모로는 연료비 부담을 크게 완화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시장 반응도 제한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발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서 경유 선물 가격이 하락했지만, 12일 뉴욕 시장에서는 직전 거래일인 금요일 종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전국 평균 경유 소매가격은 갤런당 약 6.27달러로,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6.53달러보다는 낮아졌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71% 높은 수준이다.
경유 가격 상승은 운송업계뿐 아니라 농업과 건설업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트럭은 식료품과 공산품을 운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농기계와 건설장비도 경유 의존도가 높다. 연료비가 오르면 물류비와 생산비가 증가하고, 기업들이 이를 상품 가격에 반영할 경우 소비자 물가까지 상승할 수 있다. 연료 가격 문제가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의 주요 부담으로 떠오른 이유다.
러시아의 공급 능력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원유 시장에서 중동 국가들의 영향력이 큰 것과 달리 경유 시장에서는 정제시설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등이 주요 공급국으로 꼽힌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경유 수출국이지만, 최근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 등으로 수출량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으로 인한 정유시설 피해 규모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향후 공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가 미국에 경유를 공급하더라도 세계 전체 공급량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변수다. 기존에 러시아산 경유를 수입하던 국가들이 공급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제 시장의 물량 배분만 달라지고 전체적인 공급 부족은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의 가격 부담이 일부 완화되더라도 다른 지역의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미국 정유업체들의 생산 여력도 제한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미국 정유업체들이 이미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어 세계적인 경유 공급 부족을 자체 생산만으로 보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경유 가격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하락하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이나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 정상화 등 보다 근본적인 공급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이번 러시아산 경유 도입 합의는 단기적으로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미국 내 연료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가격이 안정되려면 발표된 물량의 공급 여부뿐 아니라 국제 정세, 정유시설 가동 상황, 주요 해상 운송로의 안전까지 함께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러시아산 경유 도입은 국제 석유제품 시장의 수급과 가격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도 의미가 있다. 한국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국제 경유 가격의 변동은 국내 정유업체의 수익성과 수출 채산성, 운송업계의 비용 부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러시아산 경유가 미국으로 공급되더라도 세계 전체 공급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국제 경유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 수입국들이 대체 공급처를 찾는 과정에서 국제 석유제품 거래 흐름이 바뀔 수 있고, 공급 경쟁이 심해지면 지역별 가격 차이도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실제 공급량이 늘어나고 중동의 운송 여건까지 개선된다면 국제 경유 가격과 물류비 부담이 완화될 여지도 있다.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국내에서는 화물 운송비와 농업·건설업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식품과 공산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원유 가격뿐 아니라 정제된 경유의 국제 가격과 운송 비용을 함께 살펴야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는 러시아가 약속한 공급 물량을 실제로 얼마나 이행하는지,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이 러시아의 수출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호르무즈 해협을 비롯한 주요 해상 운송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가 핵심 변수다. 미국의 연료 가격 안정 여부는 단일 국가의 공급 합의보다는 세계적인 정제 능력과 물류 여건, 지정학적 위험이 함께 개선되는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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