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대미 투자금, 미국 AI 전력 인프라로…원전·가스발전에 336조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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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확보한 대규모 대미 투자금의 상당 부분이 원자력발전소와 가스발전소 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시설이 빠르게 늘면서 미국 내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동맹국의 자본을 전력 인프라 확충에 활용하는 투자 구조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한국과 일본의 대미 투자 사업 규모는 약 3053억달러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약 2486억달러가 발전소 건설에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투자금의 약 81%가 전력 생산시설에 집중된 셈이다. 단순히 외국 기업의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산업 확대에 필요한 전력 공급망 자체를 해외 자본으로 확충하는 방식으로 대미 투자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경우 최대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이 가운데 텍사스주 엔시널에는 약 223억달러가 투입돼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6.5GW 규모의 가스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다. 상업 운전 목표 시점은 2029년이다.
대규모 원전 건설 계획도 포함됐다. 미국 내 8기의 대형 원전을 건설하는 데 약 1200억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며, 이 가운데 2기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 설계를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가스발전소와 원전 사업을 합치면 약 1423억달러로, 한국의 전체 대미 투자 발표액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 역시 미국의 전력 인프라 확대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이후 공개된 투자 사업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발전시설 건설과 연결돼 있다.
일본의 첫 번째 투자 계획에서는 약 360억달러 규모의 사업이 공개됐으며, 이 가운데 333억달러가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의 9.2GW급 가스발전소 건설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와 함께 대규모 데이터센터 단지가 들어서면서 생산된 전력을 AI 산업에 직접 공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후 발표된 일본의 추가 투자 계획 역시 원전과 가스발전소에 집중됐다. 최대 730억달러 규모의 사업에는 테네시주와 앨라배마주에 건설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 최대 400억달러, 펜실베이니아와 텍사스의 가스발전소 건설에 최대 330억달러가 투입되는 방안이 포함됐다.
특히 일본의 1·2차 투자 계획에서 공개된 약 1090억달러 규모 사업 가운데 약 97.5%가 발전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일본 자본을 활용해 전력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이를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시설의 전력 공급에 연결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이 투자하는 대표적인 가스발전소 두 곳의 발전 용량만 합쳐도 15.7GW에 달한다. 이는 1기당 발전용량이 약 1.4GW인 APR1400 원전 11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 원전 전체 설비용량과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의 발전설비가 한국과 일본의 자금으로 미국에 새롭게 구축되는 셈이다.
이 같은 투자 방향은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전력 수요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미국 내 제조업 투자 확대까지 겹치면서 전력 공급능력 확보가 새로운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전원만으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지속적인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스발전과 원자력 등 안정적인 전원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전력 판매량이 올해 약 4135TWh, 내년에는 4211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 수요가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제조업 성장 등이 주요 증가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미국의 전력 수요 증가에서 데이터센터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지난해 전력 수요는 전년보다 약 2% 증가했으며, 증가한 전력 수요 가운데 상당 부분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보면 한국과 일본의 투자가 집중되는 지역은 미국에서도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들이다. 텍사스와 인근 지역에서는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시설 확대에 따라 전력 공급능력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이 투자하는 발전소 역시 데이터센터와 직접 연결하거나 인접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과거 미국의 해외 투자 유치는 외국 기업이 사업성을 판단해 직접 공장과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대표적으로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사례처럼 개별 기업의 생산시설 투자가 미국 내 산업 기반을 확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자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를 먼저 지정하고, 동맹국의 자본과 기업을 해당 사업에 연결하는 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병목으로 전력이 부상하면서 발전소 건설이 대미 투자 협상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미국 입장에서는 산업시설을 유치하면서 동시에 전력 공급능력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규모 에너지·AI 인프라 시장에 참여하고 발전소와 관련된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대규모 투자금이 미국 내 발전시설에 집중될 경우 한국과 일본의 국내 투자 여력이나 자본 배분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투자금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조달되고, 사업 수익이 투자자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국 정부의 정책 지원과 위험 분담 구조가 어떻게 마련되는지가 향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협상을 통해 확보한 동맹국의 투자금을 미국 내 생산시설과 에너지 인프라 확충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반도체나 데이터센터 자체뿐 아니라 이들을 가동할 전력 확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대미 투자 협상에서는 단순한 공장 건설을 넘어 원전·가스발전·전력망·데이터센터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는 사업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 기업에는 미국의 AI·에너지 인프라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대규모 자본 투입에 따른 사업성·수익성·정책 변화 위험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과제도 남는다.
한국 기업에는 미국 원전과 가스발전 시장이 새로운 수출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APR1400과 같은 한국형 원전 기술이 미국 대형 원전 사업에 활용될 경우 원전 설계·건설·기자재·운영 분야의 동반 진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투자가 동시에 확대되면 국내 반도체·전력기기·변압기·원전 기자재·가스터빈 관련 기업에도 새로운 수주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반면 대규모 대미 투자가 국내 생산시설이나 국내 에너지 인프라 투자보다 미국에 집중될 경우 국내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특히 AI 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전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국내에서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미국과의 산업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향후 미국의 AI 산업 경쟁은 반도체 성능뿐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역시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발전, 전력망 확충을 어떻게 조합할지와 함께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를 어느 지역에 얼마나 구축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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