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만나는 것도 사치”…고물가에 2030 ‘프렌드플레이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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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주거비 부담이 이어지면서 2030세대 사이에서 친구나 지인과의 만남을 줄이는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friendflation)’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사·여행·선물 등의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불필요한 모임부터 줄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경북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30)는 최근 3년 동안 참여해 온 초등학교 동창 계모임에서 탈퇴했다. 매달 3만원씩 회비를 내고 1년에 한두 차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지만, 주택 마련을 고민하면서 지출을 다시 살펴본 뒤 모임을 정리하기로 했다.
김씨는 여행을 제외하면 평소 친분이 크지 않은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들과는 별도로 만남을 갖기로 했다.
친구를 만날 때 발생하는 식사비와 교통비, 여가비 등이 상승한 것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서울 지역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838원으로 1년 전보다 5.9% 상승했다. 주요 외식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삼겹살 가격은 4.3%, 칼국수는 3.6%, 냉면과 삼계탕은 각각 2.8%, 비빔밥은 2.7%, 자장면은 2.1%, 김치찌개는 1.8% 올랐다.
외식뿐 아니라 여가와 이동에 드는 비용도 증가했다. 최근 오락·문화 관련 비용과 운송 서비스 가격도 상승하면서 청년들이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떠날 때 체감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청년층의 지갑 사정도 녹록지 않다.
올해 1분기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약 539만원으로 1년 전보다 1.7% 감소했다. 같은 기간 40대 이상 연령층의 소득은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39세 이하 가구주의 실제 주거비는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소득이 줄거나 정체된 가운데 주거비와 생활비가 늘어나면서 청년들이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소비부터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년들의 실제 소비 행태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
한 구직 플랫폼이 1995~2010년생 Z세대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을 부담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1년 동안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에 사용하는 돈을 줄였다는 응답도 71.2%에 달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8)는 친구들과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3만~4만원 수준이었던 선물이 점점 고가의 생활용품이나 골프용품 등으로 커지면서 선물을 받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비슷한 금액의 선물을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청년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자동으로 표시되는 생일 알림 기능을 끄는 방식으로 선물 교환 자체를 줄이기도 한다.
이 같은 소비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인간관계와 관련된 지출이 감소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가계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교제 관련 지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14.7% 감소했고,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34세 이하 1인 근로자 가구의 소득에서 교제비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9년 2.2%에서 지난해 1.3%로 낮아졌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상당수 응답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 사교 모임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프렌드플레이션은 단순히 청년들의 인간관계 변화에 그치지 않고 내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친구들과의 외식이나 여행, 문화생활, 선물 등은 대표적인 선택적 소비다. 이런 지출이 줄어들면 외식업과 여행·레저업, 문화·여가산업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청년층이 주거비와 대출 상환, 저축을 우선시하면서 외식·여행·취미 등에 사용하는 돈을 줄이면 이미 둔화된 내수 회복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주택 마련이나 저축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자산 형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앞으로 물가와 주거비 부담이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소비는 ‘사람을 만나는 비용’부터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고가 외식 대신 저렴한 식사나 집에서 만나는 방식이 늘고, 정기적인 계모임이나 고가 선물 대신 필요할 때만 만나는 실용적인 관계가 확산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소비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식·여행·문화업계가 청년층을 대상으로 가격 부담을 낮춘 상품이나 소규모·저비용 서비스를 확대한다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
결국 프렌드플레이션은 단순한 ‘친구 관계의 변화’라기보다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생활비와 주거비가 청년층의 소비 우선순위를 바꾸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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